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 2

Movie/헤어질 결심 2022. 8. 9.

송서래가 출입구 감시 카메라에 찍힌 시각하고 똑같이 설정해 놓고 출발.

전화를 바꿔치기해서 나오는 데 아마도 7분.
뒷방 창으로 빠져나오면 감시 카메라가 없다.
두 가지 루트가 있습니다. 쉬운 루트와 어려운 루트.
송서래는 쉬운 루트를 택했을 것이다.
남편 눈에 띄면 안 되니까.

09시, 간병인 알선 업체에서 걸려 온 확인 전화.

 

말러 5번을 들으면서 출발하면 4악장 끝날 때쯤 도착합니다.

정상에 앉아 5악장까지 듣고 하산하면 완벽하죠.

완벽한 은신처다. 송서래는 여기 숨어 있다가 정상에 올랐을 것이다.
말러 5번의 5악장이 끝나기 전에.

그냥 초밥 집어 먹듯이 한 칸 한 칸 잡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내 몸은 정상에.

138층.

오전 10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소산 비금봉의 정상입니다.
더러운 세상은 멀리 떨어져 있다.
이렇게 죽어도 좋다.

높은 데 무섭다면서요?
왜 그렇게 맞으면서, 무슨 가축처럼 몸에 낙인까지 찍혀 가면서도

경찰에 신고를 안 해요? 왜 경찰을 안 믿어요?
중국 돌려보낸다고...


그래서 남편한테 협박 편지를 보냈어요?
언제 와도 올 편지였어요. 뇌물 다 진짜니까.

 

기도수가 출입국 외국인청에 보낸 편지도 썼겠네요?
봉투에 적힌 주소랑 이름은 자필 맞던데? 어떻게 했어요?
남편이 쓴 항변을 고치기만 했어요. 유서 느낌 좀 나게.

수완이가 폭력 썼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겠네요?
경찰이 술 먹고 여자 집에 오면 폭력 아닌가요?

사진 다 태우고 내가 녹음한 파일들 다 지우고
그것도 참 쉬웠겠네요?

좋아하는 느낌만 좀 내면 내가 알아서 다 도와주니까.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우리 일, 무슨 일이요?
내가 당신 집 앞에서 밤마다 서성인 일이요?
당신 숨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잠든 일이요?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할머니 폰 바꿔 드렸어요. 같은 기종으로. 전혀 모르고 계세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붕괴 (崩壞)
1. 무너지고 깨어짐.
붕괴 위험.

 

 

 


海(바다)

 

 

 

당신 이포 와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한데...
행복해, 나도.
당신은 살인이랑 폭력도 같이 있어야 행복하잖아.

내가 딱 십 분만 참는댔지. 네 엄마 봐서.

너 여자 때리고 다니는 거 엄마가 아셔?

네 별명이 뭔지 아셔?

엄마 돌아가시면 냉동실에 넣어놓고 네 남편 죽인 다음에 장례 시작한다.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사랑해,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
사이는 됐고 이사나 가자.

구두 신었네?

여긴 어떻게...
이사 왔어요.
왜요? 이 동네 뭐 볼 거 있다고.
안개 좋아해요.
송서래입니다. 중국인이라 한국말이 부족합니다.
여보, 그 형사님이셔. 나 의심했던.
아, 제가 그다음 남편입니다. 임호신입니다.

안개는 사람들이 여길 떠나게 하는 이유지 오게 하는 이유는 아닌데?

여기선 뛸 일이 없어서요.

여보, 축하해. 살인 사건이래.

이러려고 이포에 왔어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송서래씨 잘 들으세요.
이번 알리바이는요, 차돌처럼 단단해야 할 겁니다.

사건으로 만났던 여자야. 작년 부산에서. 그때도 남편이 죽었어.
저분이 죽였어요?
자살로 종결됐는데 여기서 또 남편이 죽은 거야. 또 내 관할에서.
저분 오른손잡이인데요?
그러니까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해서 저 여자가 범인인지.

왜 그런 남자랑 결혼했습니까?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포에는 무슨 연고가 있어서 오셨나요?
연고가 없어서 왔습니다.

사랑이 아닌 이유로 선택한 남편이고,
그 남편이 여기저기서 협박을 받고, 그러다 죽고.
작년하고 똑같네요?
예? 그 남편은 자살이고 이 남편은 피살인데요?

두 남편이 한 형사의 관할 지역에서,
그것도 멀리 떨어진 관할 지역에서.
자살하거나 살해됐어요.
누가 이렇게 됐단 얘기를 들었다면 난 이럴 거 같아요.
거참 공교롭네?
송서래씨는 뭐라고 할 거 같아요?

참 불쌍한 여자네.

진짜 이 동네에 왜 왔어요?
왜 자꾸 물어요?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그게 중요해요, 당신한테? 그게 왜 중요한데요?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거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청록색 원피스 어딨어요?

파랑으로 보였다 녹색으로 보였다 하는 거.
반짝이는 단추 달리고.
자세히도 봤네요.

산책하고 왔더니 피 냄새가 지독했어요.
당신 생각 났어요.
당신이 와서 이걸 볼 텐데.
당신이 무서워할 텐데.

구두 신었네? 수염이 보이고.
아침저녁으로 면도하던 사람이 게을러졌나?
힘이 없어 보이네. 나를 못 만나서?
그가 그 이상한 중국음식을 만들 때
내가 옆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쟤는 담배연기도 못 참아주면서 말로만 사랑은 무슨.

그가 날 훔쳐본 밤들도 생각나.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잠 안 자고 지켜주는 기분이 들었지.

그가 온다.
오자마자, 이러려고 이포에 왔냐고 물을 텐데 어떡하지?
왜 자꾸 눈물이 나고 난리야, 송서래.
답을 말해야 하나?
아냐. 이미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묻지 않을지도 몰라.

이러려고 이포에 왔어요?

 

그 전화기에 뭐 들었어요? 대답해요. 문 열어요, 빨리.
저 거기 없는데요.
그럼 어딘데요?
호미산.
임호신 전화기에 뭐가 들었길래 바다에 버렸어요?
졸지 말아요. 조금만 더 참아요. 여기는 안개 없어요.

산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자주 말했어요.
내가 속상할 때마다, 한국 가면 네 산이 있다.
재판에서 나라에 뺏겼지만 누가 뭐래도 내 맘속에선 호미산은 내 산이에요.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해준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 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지금 농담할 때입니까?

날 떠난 다음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이제 내 손도 충분히 보드랍죠?

지난 402일 동안 당신을... 당신이...
그렇다고 해서 난 경찰이고 당신이 피의자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에요.
피의자 알죠? 경찰한테 의심받는 사람.
나 그거 좋아요. 편하게 대해 주세요, 늘 하던 대로. 피의자로.
내가 서래씨 왜 좋아하는지 궁금하죠? 아니, 안 궁금하댔나?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씨에 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버리라고 했잖아요. 아무도 못 찾게.
이걸로 재수사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난 해준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잠은 좀 잡니까?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내가 한 시간에 47번 깬대요. 믿어져요?
내 잠을 빼주고 싶네요. 건전지처럼.

임호신이 뿌리겠다고 한 음성 파일이 뭐예요?
그건 걱정 말아요.
걱정돼서 하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원본 서래씨가 갖고 있죠? 무슨 녹음이에요?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내가요?
너무 좋아서 자꾸 들었어요. 그걸 남편이 알아버렸어요.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언제요?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한국말로 해줘요. 서래씨.
해준씨, 바다에서 건진 전화 그거 다시 버려요.
더 깊은 바다에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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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깨어짐]   2020.11.23   2:50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난 해준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 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 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 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안개> 정훈희, 송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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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 감독
탕웨이 (汤唯, Tang Wei) / 송서래
박해일 / 장해준